장마철 촬영지

2012. 4. 5. 01:39CULTURE/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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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여행은 혼자가 좋다. 코끝을 내려보는 부처의 시선을 한 채, 빗줄기에 섞여 우산을 두드리는 상념에 귀를 열어 보자. 감춰뒀던 고독과 꺼내놓지 못했던 고백,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머물지 못했던 변명들, 함께 한 순간과 함께 할 수 없었던 시간들이 툭툭 발길을 끊어 놓을 것이다. 너절해뵐 수 있는 청승도 이 계절엔 흠 되지 않는다. 천둥소리와 눅눅한 추억이 이 만행(漫行)의 벗이 돼 줄 것이다.

■ 영월 선암마을

래프팅으로 몸살을 앓는 동강과 달리 서강은 아직 노출이 덜한 곳이다. 선암마을은 주천강과 평창강이 몸을 섞어 서강으로 흐르기 시작하는 곳으로, 산마을 처자의 몸세처럼 짓수굿한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원앙과 수달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고요하고 맑다. 물안개에 잠긴 선암마을에서는 밭은 숨조차 촉촉히 젖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평소 넓은 모래톱을 드러내는 곳이지만, 장마철에는 꽤 다급한 물살이 산을 휘감고 돈다. 비를 받으며 천천히 거닐면 남종화의 풍경 속에 선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신을 벗어 놓고 물 먹은 흙의 부드러운 속살을 밟아보는 것도 이 계절에만 가능한 경험이다. 서강을 따라 물길을 좇으면, 단종의 서러움을 품은 장릉의 아름다움도 만날 수 있다.

■ 조계산 불일암

어디든 마냥 귀의하고픈 절실함이 있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송광사의 말사이지만, 이곳의 소박한 호젓함 앞에 그런 격은 거추장스럽다. 이 암자엔 일주문도 불이문도 없다. 

퇴비를 굳힌 듯 검은빛을 띠는 흙계단과 서걱대는 댓바람이 법계와 색계를 통로처럼 이어준다. 작은 선방과 부엌, 화장실 하나가 전부인 검박한 입정(入定)의 세간살이 앞에, 머릿속에 고집스레 담고 온 상념이 부끄러워진다.

내면이 탁한 여행자에게, 이곳은 오래 있기가 죄스러운 곳이다. 허니 온 길을 되짚어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 한다. 되돌아 내려가는 길에 우산을 젖히고 자꾸 되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빗줄기에 가려 멀어지는 불일암의 모습에 추잡한 아집도 함께 묻히기를 바라며. 고독이 사무량심으로 화할 수 있는 곳이 속세에 있다면 아마 여기가 아닐까. 법정 스님이 지은 암자로 소박한 그의 품성이 배어있다.

■ 종로 부암동길

‘호젓함’마저 기성품으로 포장해 파는 서울에서 그나마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후각 예민한 자본에 의해 이 거리도 허겁지겁 팬시상품으로 꾸며지고 있지만, 아직 한적하고 예스러운 서울의 풍경이 많이 남아 있다. 카페들이 새로 들어선 창성문 부근보다는 부암동사무소를 지나 인왕산길로 이어지는 주택가가 좋다.

양팔을 뻗으면 손바닥에 두 벽이 닿는 좁은 골목길, 사자머리 모양의 손잡이가 아직 달려있는 철제 대문, 가파른 언덕 위의 교회가 아직 사람들의 생활 속에 남아 있다. 장대비가 내리면 시멘트로 덮인 골목 위로 빠른 물살의 도랑이 생겨난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손수 뽑은 커피를 파는 가게들도 구석구석 숨어 있다. 비 긋는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진한 커피 한 잔의 고독이 간절해지는 곳.

■ 전주향교와 전동성당

퇴락한 도시의 풍경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먹먹한 향수를 갖고 돌아가게 만든다. 전주라는 도시가 그렇다. 하지만 새로 조성된 한옥마을은 버거운 상술이 가득하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과 동행하고픈 여행자라면, 그 끝에 자리한 전주향교가 적당한 곳이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검은 나무기둥에서 풍겨오는 수백년 묵은 향이 마당의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감싸고 돌아 코끝을 건드린다.

전동성당은 번잡한 한옥마을의 초입에 있지만, 경내?고요한 공기는 깊은곳에 숨어 있는 수도원 못지않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백년 세월을 지켜 본 돌계단이 다시 물이 든 듯 윤기를 되찾는다. 옛 왕조의 박해와 도시의 성쇠를 겪어낸 육중한 석조건물에 낙숫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서 있으면, 바로크 성가곡이 귓전에서 연주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 김포 초지진

활어회나 조개구이를 먹으러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초지진. 이곳은 비바람이 부는 날에야 외적을 막아 둔진(屯陣)하던 본래의 면목을 되찾는다. 황산도를 향해 치닫는 빠른 물살은 격한 파도를 토해내고, 포구에 서서 꺾이는 물결을 굽어보는 여행자의 뺨에도 거친 빗줄기가 침범한다. 덩그라니 전시된 대포 한 문이 빗속에서 홀로 처량하다.

대명포구에 자리잡은 어지러운 장삿집의 간판들도 비바람 속에서는 그 천박함이 면책된다. 길고 긴 해안을 따라 걸으며, 혹 좌판을 걷지 않은 아낙이 있다면 소주 한 잔도 좋다. 지난했던 역사와 현란한 상술, 바닥없이 침잠하는 여행자의 내면이 비 내리는 김포 앞바다에서 얼근한 취기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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